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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김일성이냐 박헌영이냐/레베데프 당시 정치사령관 첫 증언

    ◎스탈린이 면접 지명/46년 7월 크렘린서 극비리에/당시 군부·외무성 다투자/스탈린,김에 공산화 지시 【모스크바=김국후 특파원】 소련의 스탈린이 소련군 북한주둔 11개월만인 194

    중앙일보

    1991.11.30 00:00

  • [특별기고] 미·소 해방군·점령군 논쟁 어떻게 볼까

    [특별기고] 미·소 해방군·점령군 논쟁 어떻게 볼까

   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『해방 정국의 풍경』 저자 국가 경영에서 역사를 잊는 것도 비극이지만, 역사 논쟁이 과열돼 진영 논리로 비화하고 국론이 분열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.

    중앙일보

    2021.07.09 00:30

  • 소정치장교/입북전 김일성 「면접」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3)

    ◎소의 선택과정/당시 88여단 대대장… 베리아 추천설도/김용범·최용건·김책·강건도 “지도자감” 주목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45년 8월하순 하바로프스크에 있던 25군정치장교 메크레르

    중앙일보

    1991.08.19 00:00

  • 48년 남북정치협상은 蘇각본-蘇민정사령관 레베데프 비망록

    민족분단을 막기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1948년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(南北)지도자연석회의와 김구(金九).김일성(金日成). 김규식(金奎植).김두봉(金枓奉)등 남북정치지도자들의 회담이

    중앙일보

    1994.11.15 00:00

  • 5.蘇 朴憲永도 빠뜨려선 안된다

    ◇1948년4월21일 〈회의과정〉 회의 집행부(註‥주석단)에조소앙(趙素昻.韓獨黨 부위원장).여운홍(呂運弘.社會民主黨선전국장)을 포함시켰다.정세에 관한 김일성의 보고는 깊은 관심속에

    중앙일보

    1994.11.22 00:00

  • "김일성, 배운 것 없지만 발전 가능성"

    “남조선노동당의 전술에 대한 ‘노인’(朴憲永 남노당 부위원장을 지칭)의 견해를 보낸다. 우리 생각은 이 제안을 승인해 달라는 것이다. 우리 전술은 다음과 같다. 미군정(美軍政)의

    중앙일보

    2004.02.24 10:45

  • 「항일」내세워 김을 지도자로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40)

    ◎김일성 선택과 소군부 역할:하/이승만 귀국알고 서둘러 입북시켜/토지개혁등도 김의 이름으로 추진 평양주둔 소 25군 사령부는 제1전선군 군사정치위원 스티코프상장의 「절대비밀」지시를

    중앙일보

    1992.02.17 00:00

  • 김일성 권력장악,남북분단 재촉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48)

    ◎「임시인민위」 설립/김,임정수립전에 북쪽 개혁 내세워/소 군정 간섭 안받고 독자 결행설도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신탁통치결정으로 비롯된 혼란이 조금씩 가라앉을 무렵인 46년 2월8일

    중앙일보

    1992.03.23 00:00

  • 공산당분국 창설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10)

    ◎국내파에 견제당하는 김일성 대회기간 내내 박헌영측과 심한 갈등/소서 추천한 김용범이 책임비서 맡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등장은 북한의 정치적 전환점이었다. 이전까지 김일성의 권

    중앙일보

    1991.09.26 00:00

  • 257.

    中央日報 현대사연구소는「46년 10월 총파업 蘇군정이 지원」「좌익계 3당 합당 蘇군정이 지시」등의 내용이 담긴『스티코프비망록 1,2권』에 이어 해방정국의 또다른 역사적 진실을 밝혀

    중앙일보

    1995.06.06 00:00

  • 조만식과 소 군정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7)

    ◎겉으론 협력 속으론 갈등/이북5도 대표협 결성… 통치기구 정비/고당 “손은 잡되 소 잘못땐 비폭력 저항” 소 군정과 조만식의 관계는 미묘했다. 해방이 됐으니 자주독립국가를 세워야

    중앙일보

    1991.09.09 00:00

  • 6.蘇 南대표에 총선후 정부수립약속받아라

    ◇1948년 4월23일 〈김일성.김규식회담〉 ①우리들의 불참아래 회의를 시작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다.②왜 美제국주의라고부르는가.미국이라고 불러야 한다.③소회의(註:예비회담)를 시

    중앙일보

    1994.11.23 00:00

  •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(51)|"김일성만 지도자로 부각하라"

    해방 직후 남북의 언론에 닥친 운명은 판이하게 달랐다. 남한에서는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과 각 진영의 정치적 이해가 언론이라는 출구를 통해 마음껏 배출될 수 있었다. 미군정의 자유주

    중앙일보

    1992.04.02 00:00

  • 1.

    中央日報 현대사연구소가 발굴한 『스티코프 비망록』은 북한정권수립기에 북한의 최고실권자였던 스티코프가 그날그날 있었던 구상과 생각들을 꼼꼼히 일기형식으로 적어놓은 중요 사료(史料)다

    중앙일보

    1995.05.09 00:00

  • ▲1.경제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13시 평양으로 출발.저녁 8시 김일성(金日成.북조선인민위원회위원장)과 박헌영(朴憲永.남로당부위원장)을 만나기로 약속. 2.북한의 상황에 대해 정보를

    중앙일보

    1995.06.13 00:00

  • (298)|제21화 미·소 공동위원회 |문제안

    이 같이 소란한 가운데 3월20일부터 29일까지 계속된 공위에서는 삼상회의 결정 가운데 있는 3절2항과 3절3항의 실천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. 구체적인 내용은 ①민주주의 정당 및

    중앙일보

    1971.11.04 00:00

  • 스탈린/김일성 오른쪽 앉혀 낙점암시/45년만에 밝혀진 북한 비사

    ◎평양에 군용기 보내 김·박헌영 불러/“박은 지명도 낮다” 판단 탈락/“차기후보” 주위 위로에 박 불만없이 소에 수긍/면접뒤 연안파 합당등 김 체제 확립 【모스크바=김국후특파원】

    중앙일보

    1991.11.30 00:00

  • 2.蘇군정 남한정세 손금보듯

    비망록 내용의 대부분이 지금까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다가 처음으로 공개된 것들이다. 1948년 3월25일밤 평양방송을 통해 4월14일 평양에서「남북 정치협상」을 개최한다고 발표한

    중앙일보

    1994.11.16 00:00

  • 김일성 암살 미수사건:상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43)

    ◎46년 평양역광장/3·1절행사때 날아든 수류탄/김 연설 끝나자 군중속에서 청년이 투척/소 경비장교가 주워던지려는 순간 “꽝”/증언자 김세일씨 신탁통치 찬·반폭풍으로 벌집 쑤셔놓은

    중앙일보

    1992.03.02 00:00

  • “중위세력손잡고 사회주의로통일”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38)

    ◎박헌영의 정치노선:하/소의 「찬탁」지지에 겉으로만 따르는 척/남쪽 정세 불리하자 김일성 지지 선회 해방후 서울주재 소련영사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박헌영은 남북의 「당중앙」위치를

    중앙일보

    1992.02.10 00:00

  • [박보균의 현장 속으로] 해방공간의 불꽃 격돌…‘승부사’ 이승만은 하지를 어떻게 눌렀나

    [박보균의 현장 속으로] 해방공간의 불꽃 격돌…‘승부사’ 이승만은 하지를 어떻게 눌렀나

     ━  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 - 광복 75돌 잊혀진 인물 ‘하지 미군정 사령관’을 찾아서   해방공간이 열렸다. 1945년 8월 15일 광복이다. 정치 무대가 펼쳐졌다. 3년

    중앙선데이

    2020.08.15 00:02

  • "김일성, 배운 것 없지만 발전 가능성"

    "남조선노동당의 전술에 대한 '노인'(박헌영 남로당 부위원장을 지칭)의 견해를 보낸다. 우리 생각은 이 제안을 승인해 달라는 것이다. 우리 전술은 다음과 같다. 미 군정(軍政)의

    중앙일보

    2004.02.23 18:22

  • 소,조만식 대통령 구상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2)

    ◎45년 10월 “고당 제거” 정보입수… 김일성 불러 호통/소 정치장교/“찬탁” 설득하면서 제의/김은 군사책임자 내정 조만식에 대한 소련측의 관심은 특별했다. 그것은 당시 고당의

    중앙일보

    1991.08.14 00:00

  • (29)박헌영-김일성 4차 회동(3)

    46년7월, 남과 북에는 제2의 「좌익세력개편」이 전격 시작됐다. 김일성을 실세로 부상시킨 분국의 등장이 첫 개편이라면 북조선공산당의 조선신민당(신민당)과의 합당, 조선공산당과 인

    중앙일보

    1992.01.06 00:00